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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해외여행이라곤 일본에 몇 번 다녀온 게 전부였고,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201611일부터 3일까지의 23일 간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왜 굳이 이 여행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아래의 글로 답을 하려고 한다.

소설가 김연수는 <소설가의 일>에서, 이야기가 되려면 ?”, “어떻게?”, “설마 그럴 줄이야등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김연수가 좋아하는) 하루키도 그의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서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라는 것이 나의 철학(비슷한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 이 여행은 나름 사연도 있고, 정말 버라이어티한 여행이 어떤 것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준다. 물론 이보다 더 심한 여행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험으로 한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제 1일차부터 3일차까지 순차적으로 풀어나가려 한다.

참고로 여행을 다녀온 직후 손으로 두 번 썼던 적이 있다. 초벌로 쓰고, 고쳐 써보았다. 두 번째 고쳐 쓴 글로 이벤트를 해서 열 사람에게 배포했었다. 그 글을 다소 시간이 흐른 뒤 블로그에 옮겼다가 올해 들어 노트북에 다시 쓰게 됐다. 그러는 와중에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부분에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고, 돼먹지 않은 비유도 조금 들어갔다. 나름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넣었는데, 재미없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시길.

 

20186월의 어느 날, 카페에서.

 

 

 

 

 

 

 

 

 

 1일차

 

지난 두 번의 자유여행만큼 설레진 않았으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걸 보면 내심 기대는 됐던 모양이다. 이쯤 되면 다음날 꽤나 피곤할거란 생각이, 습기를 잔뜩 머금은 먹구름마냥 머리 위에 낮게 드리워지겠지만, 막상 일어나보면 진통제 투혼을 펼치는 운동선수처럼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닐 수 있으리라는 것도 안다.

일어나서 씻고, 칫솔과 면도기를 챙겨 넣으면서 나의 짐은 완전체가 되었다. 공항까지 공항버스를 탈까 전철을 탈까 고민했었다. 왜냐하면 시흥에는 공항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공항버스를 타야 하는데, 안산에서 출발할 때의 요금-편도 11,000-을 똑같이 내면서도 나중에 탄다는 이유로 서서 가는 것은 아무래도 공평치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래서 힘은 조금 더 들겠지만 비용이 절반 이하인 시내버스와 전철의 조합을 선택했다. 인천공항 역의 개찰구에서 확인한 요금이 4,250원이니 왕복으로 계산해보면 8,500원이다. 공항버스 편도 요금의 80%도 안 되는 수준이니 힘이 난다 힘이나. 물론 후쿠오카를 간다는 진통제의 힘이 더 크지만.

 

인천공항 역의 개찰구를 빠져나와 발권하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 다다르는 동안 펼쳐진 익숙한 풍경에 나의 추억을 관장하는 세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유쾌하지 않음이라는 태그가 붙은, 2015년 후쿠오카 여행의 기억을 소환해냈다. 하지만 그것을 잊기 위한 것도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으므로 보다 좋은 추억을 남겨서 덮어버리자고 마음먹었다. 뒤에 밝혀질 일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재20186-까지 다녔던 일본 여행 중 가장 험난했고, 그래서 기억이 남는 일들이 많았으므로 그러한 측면에서는 성공적인 여행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무리 없이 발권을 마치고, 담배를 한 대 태운 뒤 시도한 로밍과 탑승 수속 모두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특히 지난 여름휴가 때 등록해놓은 자동 수속 절차로 신속하게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물론 빨리 들어간다고 그 안에서 딱히 어떤 우위를 점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속 대기 열 사이에서 지루하게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 장점인 것 같다.

발권의 경우는 키오스크로도 가능했었다. 하지만 처음해보는 것에 두려움이 있는 나로선 구미가 당기는 옵션은 아니었다. 우선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것도 별로고, 그런 상황에서 어리바리 땀으로 샤워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생애 첫 나홀로 자유여행자체가 도전인데, 한낱 키오스크 따위를 두려워하느냐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땀 흘릴 가능성이 높은 일은 배제하는 것이 옳다. 게다가 창구에서의 발권도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고, 또 기계가 해주는 것보다 사람이 해주는 편이 보다 여행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뭔가 신속하게 이루어진 것 같았지만 수속을 마치고 나니 탑승 시각까지 40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자동 심사가 아니었다면 40분보다 덜 남았겠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야 할 이유가 보다 명확해졌다. 사실 이전까지 굳이 2시간 전에 도착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탑승구 위치를 확인하고 그 방향으로 가면서 나홀로 자유여행족 버전으로 폼 잡으며 브런치를 먹을 카페를 물색했다. 내심, 직접 만드는 것은 아닐지라도 크로크무슈가 실한 투썸 플레이스를 바라고 있었는데, 탑승구까지 가는 길에는 없었다. 내가 못 찾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대신 파스쿠찌가 있었는데 아메리카노가 너무 써서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았으므로 제외했다. 일반적으로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아메리카노에 에스프레소 투 샷을 넣는데, 내 입맛에는 쓴 편이라 샷을 한 개만 넣는다. 그렇게 주문해도 파스쿠찌는 쓰기 때문에 제외시켰다. 결국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아닌 어느 카페로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스파라거스 소시지 페이스트리를 주문했다.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는데 현지 날씨가 어떨지 몰라 입은 다운재킷에 공항 내부의 난방까지 더해져 넓어진 모공으로 땀의 샘이 솟았다. 주문한 메뉴를 받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좋아요가 평소의 2.5배 수준으로 찍혔는데, 유별난 메뉴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찍힌 걸 보니 유입 키워드가 무엇일까 확인해보고 싶었다. 아마도 인천공항이라는 태그 때문이 아닐까 예상해본다. 여행을 간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과 잘 다녀오라는 의미로 눌러준 게 아니었을까.

비행기는 제시간에 인천공항을 출발했고, 별다른 지연 없이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캐리어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찾았다. 정말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아메리칸 투어리스트의 유광 네이비 색의 캐리어였기 때문에 찾는데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다. 캐리어도 금세 찾고, 입국 수속도 별 탈 없이 마치고, (패키지 여행 포함) 다섯 번째 방문이라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후쿠오카 국제공항의 대기실에 진입해서 후쿠오카 공항 역까지 가는 셔틀버스에 별도의 대기 없이 탑승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능숙한 동작으로 짐칸에 캐리어를 밀어 넣고 자리에 앉아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젖어 있었으나 여행기를 쓰고 있는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이번 여행에서 순탄했던 건 여기까지였다.

 

후쿠오카 시를 관통하는 공항선 지하철을 타고 하카타(博多) 역에 도착해서 레일 패스와 유후인(湯布院)행 티켓을 교환하기 위해 티켓 교환처로 갔다. 처음 레일 패스를 끊었던 2014년 당시에는 이게 교환증이라는 것도 모르고, 이걸 들고 기차에 타려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행동이지만, 사람은 이런 경험을 통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눈에 확 띄지는 않더라도.

교환처에서 두리번대다 마주친, (얼마 전 은퇴한) 농구선수 김주성을 쏙 빼닮은 역무원볼살 없는 얼굴과 깡마른 몸매가 정말 닮았다-의 말에 의하면 유후인 행 기차에 자리가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못가는 건가 싶어 포기해야겠다는 심정이었으나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마음으로 물은 게, "자유석에도 자리가 없나요?"였다. 그런데 말 그대로 자유석이니 원하는 시간대의 기차에 가서 자유석 칸의 아무 자리에나 앉으면 되는 거였다. 그러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자유석에는 그냥 앉으면 되는 거라고 하면서 유후인에서 출발하는 유후인 노 모리(由布院, 후쿠오카와 유후인을 오가는 열차 중 하나) 중 자리가 있는 시간대가 있다고 알려줬다. 그 역무원의 안내대로 내일 아침 745분 기차의 자유석으로 가서 같은 날 오후 645분 기차를 타고 오는 지정석 표로 구매 완료.

겨우겨우 유후인 행 기차표를 해결한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했다. 어찌 됐든 짧은 일본어로 난관을 뚫고 티켓팅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그 의기양양한 기운을 손끝에 담아 바우처에 적힌 숙소 이름을 구글 지도에서 힘차게 검색했다.

내가 사는 동네였으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주변 건물의 외양과 스마트폰을 번갈아 보며 지도의 안내대로 잘 따라갔는데, 알려준 곳에 막상 가보니 숙소가 없었다. 비슷한 이름을 가진 건물도 없었다. 검색을 몇 차례 더 해보고, 지도도 현재 위치와 대비해서 방위를 맞춰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러다 근처에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머릿속으로 문장을 만들고 있는데, 때마침 내가 서있던 곳 바로 앞 매장 안에서 어떤 일본 사람이 나와 지도 한 장을 건네주었다. 나처럼 헤매는 관광객이 어지간히 많은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거나.

그 지도를 보니 하카타 역의 동쪽으로 갔어야 했는데, 북쪽으로 와버린 것이었다. 지도상으로 확인한 거리가 적잖이 있어 보였기에 택시를 타야 하나 싶었으나 말도 안 통하는 곳에 가서 괜히 바가지를 쓰지 않을까 두려워 일단 걸어보자고 마음먹었다. 답답한 마음을 담배 한 개비로 달래고서.

크게 보면 지도를 건네받은 매장을 우측에 두고 직진하다가 히가시히에(東比恵) 역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되는 비교적 단순한 경로라 걷자고 마음먹은 거였다. 여물도 제때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쟁기질만 하는 누런 소처럼 캐리어를 질질 끌고 걷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숙소가 있는 위치를 가리키며, 걸어서 몇 분 정도 걸리는지 물었다. 12분 정도 걸린댔나? 고맙다고 하고선 재빨리 보내줬다. 건널목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졌기 때문이었다.

지도를 받은 시점에서부터 20분 정도 걸어서 숙소로 판단되는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약간 애매했던 것이, 바우처에 기재된 상호와 숙소로 판단되는 건물의 간판에 적힌 상호가 조금 달랐다. 어쨌든 뭐라도 물어보려면 들어가야 했기에 쭈뼛거리며 들어가 가볍게 목례를 한 뒤 데스크 직원에게 바우처를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 직원의 입모양이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고, 시합을 앞둔 두 복서가 눈싸움을 하듯 모니터를 쳐다보는 게 뭔가 심각한 상황이 발생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의 가사대로 일이 터져버렸다.

일단 바우처에 적힌 곳과 내가 들어간 곳은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 직원의 말에 의하면, 내가 건넨 바우처에 기재된 호실에는 여성 두 명이 예약되어 있다고 했다. 그럴 리 없다며 내 이름을 알려줬더니 예약 후 취소된 이력은 있는데 최종적으로 예약된 건은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그럴 리가 없다며 재확인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이쯤 되니 우선 내가 들고 온 이 바우처는 무엇이며, 둘째로 그렇다면 향후 2박을 묵을 숙소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남았다. 일단은 벌어진 일이니 침착하자는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으니 운 좋게도 남아 있는 방이 있다는 거였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전해져오는 가보다. 결국 1박에 2,700엔씩 5,400엔을 결제함으로써 숙박 문제는 일단락됐다. 직원으로부터 몇 가지 주의 사항과 방 열쇠를 건네받고 들어가 최소한의 짐을 꾸려 오호리 공원(大濠公園)으로 향했다.

개정판에서 밝힐 부분은 숙소 직원과의 대화가 한국어로 이루어졌다는 것과 바우처의 정체이다. 우선 그 숙소 직원은 한국인이었다.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게스트하우스 데스크에서 알바를 하는. 그래서 엉뚱한 바우처를 들고 가서도 비교적 냉정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고, 앞에서 썼던 얘기지만 죽으란 법은 없는 거다. 그리고 내가 그 바우처를 들고 있었던 건 나와 여행과 관련된 모든 예약을 대행해준 여행사 담당자, 쌍방의 부주의였다.

이번 여행을 앞두고 숙소를 잡는데 있어 총 세 건의 예약과 두 건의 취소를 반복했는데, 처음에는 시내의 호텔을 예약했다가 아무래도 비싼 것 같아 취소했다. 그다음으로 저렴한 가격에 반해 이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그랬다가 비교적 저렴한 호텔을 찾아서 예약하고 이 게스트하우스의 예약을 취소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게스트하우스의 바우처를 들고 있었을까?

일단 여행 시작일 기준으로 약 3개월 반 전에 했던 예약이라 최종적으로 예약한 숙소가 어디였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고, 여기에 여행사 직원이 두 번째 숙소 예약 건까지는 바우처가 첨부된 확인 메일을 보내줬으나 세 번째 건에 대해서는 보내주지 않았음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그동안 주고받은 메일을 통해 확인했다.

메일 내용까지 면밀하게 확인한 후 해당 건에 대해 담당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놀라운 건 죄송하다는 의례적인 인사조차도 일언반구 없이 내게로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양쪽 다 실수가 있었으니 이런 일이 있었다는 설명과 함께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를 먼저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너님의 잘못이라는 투의 답변이 돌아오니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소비자보호원과 그와 비슷한 일을 하는 곳 몇 군데에 이 건에 대한 자문을 구해보았으나 내게도 귀책이 어느 정도 있는 데다 여행사에 귀책이 있어도 시정하라는 권고만 할 뿐 강제성이 있는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는 공통된 답변이 돌아왔다.

어쨌든 한국에 돌아와서 이 글을 쓰고 있고, 이벤트가 많은 여행이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받은 느낌을 더는 퇴색시키고 싶지 않아서 추가적인 조치는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 또한 지나갔으니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첫날의 잠정적인 계획을 읊어보자면 오호리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시내로 이동해 LOFT-일본 잡화점 중 하나-라는 잡화점에 들렀다가 나카스(中洲)에 있는 야타이일본식 포장마차-를 탐방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갑, 폰 배터리, 텀블러, 카메라 외에 별다른(?) 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숙소를 나서서 큰길로 나와 하카타 역 쪽으로 걸어가면서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데 왠지 기시감이 들었다. 타국-그래봤자 일본?-에서 이런 느낌이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니 2014년 여름휴가 때 묵었던 호텔 근처였다. 길 건너편에 있는 그 호텔의 간판과 시선이 마주쳤고, 오랜만이라 반갑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간판이 건네준 온기를 품고 역까지 갈 수 있었다.

익숙한 혹은 익숙하다고 느끼는 풍경을 보고, 익숙한 또는 익숙하다고 느끼는 공기를 마시며 도착한 하카타 역 동편 입구에서 뭔가 달라졌다는 것이 감지되었다. 이번엔 또 뭔가 싶어 찬찬히 둘러보니 전에 없던 스타벅스 매장이 들어선 것이다. 순간 이전까지 왜 이정도 규모의 역 인근에 스타벅스 매장이 없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못했을까, 라는 별 의미 없는 의문을 뒤로한 채 하카타 역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후각이 이끄는 대로 미뇽-하카타 역에 있는 유명한 크로와상 매장. 정식 명칭은 IL PORNO DEL MIGNON-매장 앞에 서서, <레옹>에서 게리 올드만이 코카인을 흡입하듯 크로와상의 향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구매를 위해 대기열의 맨 끝에 섰고, 세 개를 일본어로 뭐라고 하는지 떠올렸다. 내 차례가 됐고 검지손가락으로 초콜릿맛과 플레인 크로와상을 순서대로 가리키며 "미까, 미까"라고 했는데, 0.101초간 정적이 흘렀다. 직원은 당황하지 않고 내가 가리킨 순서대로 "쓰리, 쓰리?"라며 되묻길래 나도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하이~!!"라고 대답했다. 순간 미까가 아니라 미쯔라고 했어야 함을 깨달았다. 무안함에 체온이 오르면서 모공을 비집고 땀이 스멀스멀 솟아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우스웠을까? 크로와상을 사면서 "3, 3"이라고 말한 거니까. 좋은 안줏거리를 제공해줘서 고마워요, 라고 하진 않겠지?

 

‘3일의 크로와상을 사들고 오호리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가기 위해선 공항선을 타고 오호리 공원 역에서 내리면 되는데, 3번 출구나 5번 출구로 나가도 된다. 나는 개찰구에서 가까운 3번 출구로 나갔다.

출구에서 50미터 직진 후 좌회전을 하니 공원의 산책로에 진입할 수 있었다. 첫 느낌은 일산 호수공원 느낌이랄까.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일산 호수공원은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개정판을 쓰고 있는 2018년 현재까지도. 그럼에도 오호리 공원의 호수를 보자마자 그곳이 떠올랐던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마도 가본 적은 없지만 처음으로 알게 된 호수공원이 그곳이기 때문은 아닐까.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한 입 베어 문 크로와상을 들고 호수 주변에 조성된 산책로를 현지 사람들 사이에 뒤섞여 걷기 시작했다. 뭐 거기까지 가서 공원 산책이냐 싶겠지만, "오호리 공원의 산책이요?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라고 (병만씨 톤으로) 일축해 버릴 테니.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와 하카타 역에서 산 미뇽의 ‘3일의 크로와상을 베어 먹으며 하는 산책. 그러다 조금 남겨서 물가에 진을 치고 있는 갈매기나 오리에게 던져주는 그 맛을, 해보지 않고 어찌 알 것이며, 여행지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날 했던 오호리 공원에서의 산책은 내 일생의 수많은 산책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겠지만 어느 산책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렇게 호수 주변을 돌다 보니 저녁이 가까워졌다. 하늘이 붉게 물들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저무는 해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오호리 공원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들고 벤치에 앉았을 때, 호수 한가운데 있는 섬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문득 이곳의 스타벅스가 유명한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고 있었고, 그저 커피를 마시며, 숨을 쉬듯 셔터를 누를 뿐이었다. 섬 너머로 지는 해와 그 해가 물들인 오렌지 빛 구름들, 그 석양빛을 역으로 받은 호수 주변의 나무들, 그 나무 옆 벤치, 그리고 그 벤치에 앉아 나와 같은 석양을 보고 있는 중년으로 보이는 두 남녀. 그것들을 보면서 "후쿠오카는 석양이 참 아름다운 동네구나"라는 인상이 내 머릿속에 모내기철에 모 심듯 심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앞서 호수공원 하면 일산 호수공원이 가장 먼저 떠올랐듯, 석양이 예쁜 도시 하면 후쿠오카가 연상될 것이다. 그때 떠올리는 석양은 지금 보고 있는 오호리 공원의 그것과 지금까지 봐왔던 모모치 해변의 그것일 것이다.

석양빛이 자아내는 풍경에 취해 있다가 문득 공원 내에 조성되어 있다는 일본 정원에 가보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발걸음을 재촉해 정원 앞에 도착해보니, 애석하게도 오후 5시에 끝난다는 안내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외국인 관광객에겐 인기가 별로 없는 곳인지 일본어 외에 그 어떤 언어로 된 안내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검색을 통해 본 그 정원은 참 예뻤었는데. 이로써 후쿠오카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추가됐다.

아쉬운 마음을 고이 접어 다시 와야 할 이유폴더에 넣고, 공원 뒤편에 있다는 고고쿠 신사(護國神社)에 가보기로 했다. 이 신사 이름의 한자를 그대로 읽어보니 호국신사였다. 이 간판을 보다 "그들에게 호국이란 어떤 의밀까?"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이내 근대 제국주의 역사가 떠올랐지만, 그전부터 이 지방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도 있었겠지, 라는 다소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보기로 했다. 그 안에 들어가 보니 신년 첫날이라 그런지 참배객들이 많았다. 어림잡아 100미터는 돼 보이는 줄이 다섯 줄 가량 늘어서 있었다. 호수공원의 주변을 산책할 때 느끼지 못했던 이방인의 느낌이, 먹이를 찾아 동아프리카를 누비는 누 떼처럼 몰려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신사의 입구부터 죽 늘어선 꼬치를 비롯한 각종 먹거리를 파는 가판대를 보니, 우리나라의 절 주변의 풍경과 비슷해서 조금 전에 다가온 이방인의 느낌을, 얼마 간 누그러뜨린 채 신사를 나설 수 있었다.

신사를 나오니 날이 제법 어두워졌다. 공원에 들어올 때 입간판에서 본 루미나리에를 보기 적절할 정도로 깔렸다. 하지만 신사를 나와 되돌아온 공원 쪽에선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체 루미나리에는 어디서 하는 거냐며 투덜거리고 있는데, 공원에 들어와서 본 호수를 질러 놓인 다리에 크리스마스 트리에 두름 직한 꼬마전구가 붙어 있던 것이 떠올랐다. 그 길로 고고쿠 신사 쪽에서 공원으로 들어와 왼쪽으로 조금 돌다 호수 중간 부분의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 전구가 붙은 그 다리로 향했다.

공원 안내도를 보면 섬이 세 개가 있는데, 산책로와 첫 번째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니 가로등이 양쪽에 하나씩 있었고, 그 가로등을 지나니 칠흑 같은 어두움이 깔려 있었다. 그 어두움은 연인끼리 왔을 때 은밀한 행위를 할 수도 있겠다는 낭만적인 생각보다는 괴한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이 앞서는 농도였다. 그리고 그 어두움의 끝자락부터 루미나리에는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탓일까.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예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작았고, 예술적 가치도 보통 이하였다. 어지간해서는 호감이란 걸 가질 수 없는 수준이었다. 광고를 하지 않아서 의외의 발견이었다고 한다면 차라리 나았겠다.

 

그걸 끝으로 공원을 뒤로하고 오호리 공원 역 3번 출구로 들어섰다. LOFT가 있는 텐진(天津) 역까지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200엔짜리 티켓을 뽑아 들고 전철에 몸을 실었다.

처음에 구글 지도로 검색했을 때는 텐진 역 지하상가를 통해 텐진미나미(天津南) 역 방향으로 가서 그 역의 지하상가 쪽 입구를 지나 첫 번째 출구로 나가면 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상 텐진미나미 역 인근까지 가보니 어디로 가야 좋을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근처에 있는 역무원에게 문의를 했고, 알려준 방향으로 가니 곧바로 지상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거기가 텐진 역 7번 출구였고, 결과적으론 원래 나오려고 했던 출구의 바로 직전 출구였다. 거기서 다시 검색한 결과대로 따라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20시까지 영업한다는 것으로 알고 갔으나 새해 첫날이라 18시에 닫은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원래 나오려고 했던 출구를 통해 지하로 들어갔는데, LOFT로 가는 데만 정신이 팔려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이 닫혀 있는 상점들이 적잖이 눈에 띈 것이다.

오늘의 일정은 여기까지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제야 배가 고프다는 게 느껴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인천공항에서 940분쯤 빵 한 개와 커피를 마시고, 여기에 와서도 크로와상에 커피 한 잔 마신 게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야 공복감을 느끼다니. 여행이라는 게 이런 기본적인 감각마저 잊게 만드는 것인가도 싶었다.

다시 전철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하카타 역에 내렸다. 밥을 먹든 숙소로 바로 들어가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식당을 찾았다. 전에 가본 적이 있는 하카타 역 1번가로 진입했다. 어디로 갈까 두리번거리다 한국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우동이나 카레는 일단 제쳐두고, 현지인이 제법 줄 서있는 일본 가정식-가정식이라는 말은 일본에선 잘 쓰지 않는 단어란다-을 파는 식당으로 결정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봤다. 글보다는 그림으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마치 유치원생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고심(?) 끝에 고른 메뉴는 たんとろろ定食-소 혓바닥구이 참마 정식 정도로 알아두자-이었다. 샐러드와 소 혓바닥 비슷한 고기를 얇게 저며서 소금과 후추로 심심하게 간을 해 익혀 내주고, 미소시루와 흰쌀밥에 찰기가 있는 흰 죽,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날계란이 담긴 그릇이 검은색 쟁반에 담겨 나왔다. 생맥주도 빼먹지 않았다. 바늘 가는데 실이 따라 가지 않을 수 없으니까.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물어봐야 하는 상황인 것은 해가 지면 달이 뜨는 것만큼이나 당연하지만, 도저히 듣기가 안 될 것 같아서 주변에서 먹는 걸 보고 따라 해 보자고 결심했다. 소심히.

흰 죽은 밥에 비벼 먹길래 나도 조금-소심하게- 덜어서 밥에 얹었다. 그리고 비볐다. 그러나 별로였다. 무미에, 무취에, 끈적거리기까지 한 이걸 대체 무슨 맛에 먹나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간장이라도 달라고 했어야 했던 것 같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고기는 샐러드를 얹어서 먹기도 하고, 따로 먹기도 하면 되니까 어려움이란 건 없는데, 또 다른 문제는 날계란이었다. "이걸 깨서 밥에?"라고 미루어 짐작하고 가게 안을 둘러보았지만, 그렇게 먹는 손님은 (적어도 그때까지는)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물어보려고 용기를 내어 소심히서빙을 호출했다. 서로 눈이 마주쳤고 계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손으로 깨는 시늉을 하면서 "미쿠스-믹스의 일본식 발음-"라고 하는 거였다. 내가 계란을 가리키자마자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나 같은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우려했던 대답이 나오자 나는 처참한 기말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여드린 학생마냥 낙심했다. 뜨거운 밥에 날계란을 비비면 비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해가 지면 달이 뜨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결국 그건 포기하고 나머지 음식으로만 먹으면서 주위를 다시 살피니 다들 그렇게 잘만 먹더라.

먹고사는 일의 힘겨움을, 색다른 방식으로 몸 곳곳에 새기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큰 사거리에서 만난 훼미리마트에서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와 에비스 500ml를 한 캔씩 샀다. 편의점에서 나와 숙소로 들어가는 골목을 찾는데, 아무리 봐도 눈에 익은 골목이 없었다. 지나친 건가 싶어서 되돌아도 가보고, 이면도로로 돌아들어가 한참을 돌아다니다 낮에 받은 지도를 꺼내봤는데, 생각보다 덜 간 상태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낮과 밤의 차이도 있겠고, 익숙하다는 마음에 쉽게 본 것도 있고, 제 아무리 익숙하다고는 해도 타지는 타지인 것이다.

짐을 풀어놓고, 샤워를 하고, 3층 휴게실에 올라가 오는 길에 사 온 맥주를 마시며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을 읽었다. 그리고 12시가 조금 안된 시각에 숙소로 다시 내려와 잠을 청했다. 내일은 유후인에 가야 했으므로.

 

 

 

 

 

 

 

 

 

 

 

 

 

2일차

 

유후인에 가기 위한 열차 시각이 있어서 한국에 있을 때보다도 더 일찍 일어났다. 쉬는 날에 무언가를 하려고 6시에 일어나다니, 이건 내게 삼겹살을 먹겠냐고 물었을 때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이다.

어젠 정말 잘 잤다. 아마도 최근 2년 새 최고의 꿀잠이 아니었을까? 집에서도 이런 잠을 못 자던 내가, 여행지에서 숙소로 잡은 게스트하우스의 딱딱한 침대에서 그런 잠을 자다니. 여행은 모든 걸 잊게 해주는 것 같다. 물론 피곤한 일정 탓도 있겠지만.

도미토리라 다른 침대에서 자는 사람도 있었기에 최대한 조용히, 최소한의 불빛-핸드폰 화면을 이용한-을 이용해서 떠날 채비를 했다. 유니클로 아이보리 니트 카디건에, 유니클로 네이비 색 다운 점퍼, 비욘드 블랙 로퍼, 역시나 유니클로 청바지를 입고 숙소를 나섰다. 도보로 하카타 역 앞에 도착하자마자 어제 봐 둔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한국에서 늘 마시던 대로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에 샷은 한 개. 이걸 설명하는데 혼선이 있었다. 나는 에스프레소 샷 하나만 필요하다는 거였는데, 스태프는 원 샷을 추가하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소통에 성공했다. 재밌는 건 여기도 텀블러 할인이 적용된다. 20.

혼선의 아메리카노를 들고 역사로 들어가 어제 자 폴더에 넣어뒀던 에키벤또(駅弁) 전문점으로 갔다. 고심 끝에 소고기 야키니쿠(燒肉) 도시락을 샀다. 1,080. 여기까진 한 손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패스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별일 없이 게이트를 통과해서 훼미리마트에 들어가 도시락에 곁들일 아사히 드라이 프리미엄 맥주와 지난 세 번의 자유여행 중 줄기차게 만났던 I LOHAS 생수를 사서 플랫폼에 섰다.

난 자유석이었기 때문에 줄을 서는 것부터가 중요했다. 그런데 기차의 사진을 찍다가 하마터면 서서 갈 뻔했다. 왜 찍으려고 했냐면 이번에 탄 기차는 기존에 탔던 유후인 노 모리가 아닌 유후 특급(由布 特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재빠르게 찍고 재빠르게 움직여 자리를 확보했다. 순방향 왼쪽 창가로. 도시락도 맛있게 먹었다. 맥주를 곁들여서 먹고, 스타벅스에서 공수해온 커피로 입가심도 했고, 게다가 한 정거장인가 갔을 때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일본 여성이 내 옆자리에 앉아서 유후인 판 <비포 선라이즈>도 꿈꿔볼 수 있었다. 결론은 같이 내리긴 했지만, 어머니로 보이는 동행이 있었다.

 

유후인에 도착하니 105. 6개월 만에 다시 밟은 유후인. 감회가 새로웠고, 동시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도 떠올랐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뇌에서 이 기억만 차단시킬 순 없는 것이고, 만약 그게 있다면 기억을 지우러 오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겠지. 안내소로 가서 "캉코쿠진데스(韓国人です, 한국인입니다)"라고 말하고 한국어로 된 안내도를 받았다. 그리고 화장실 앞 흡연소에서 담배를 태우며 떠올리고 싶지 않았으나 떠오른 기억의 일부를 연기와 함께 날려 보내는 의식을 치렀다.

지도를 보니 역 입구를 등지고 직진하다가 샛길로 빠져 다시 직진하면 긴린코(金鱗湖)까지 갈 수 있었다. 대략의 경로를 확인하고 천천히 역 입구를 등 뒤에 놓고 곧장 뻗은 길의 인도로 걷기 시작했다. 눈에 익은 풍경이었지만 느낌은 전혀 달랐다. 그 다른 느낌은 마음에 새기고, 풍경은 눈에 새겼다. 그리고 코를 통해 들어온 공기는 폐포 하나하나에 정성스레 집어넣었다. 그 행위는 지난 여름의 기억을, 완전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기억 교환 작업의 일환이었다.

앞서 말한 샛길로 빠지기 직전에 조그만 다리가 있었고, 그 다리를 건너 샛길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완전히 처음 걷는 길이었다. 따라서 이 샛길을 따라가며 보는 것, 느끼는 것은 모두 새로운 기억이다. 예쁜 것들이 있으면 모두 셔터를 눌러 이미지 센서에 새겼다. 그러다 <どんぐりの(도토리의 숲)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입구에 선 순간의 느낌은 '위험하다'였다. 왜냐하면 그곳의 정체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지브리 캐릭터 샵이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곳이지만, 혹시 일본 한정 아이템-일본은 한정판을 좋아하니까-이 있을까 싶어 들어 가봤다. 딱히 다른 점을 발견할 순 없었으나 눈이 뒤집히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의지의 재확인. 일단 무얼 살지 찜해놓고 나왔다. 유후인에 온 목적 중 하나인 <유후인의 고양이 집>에 무엇이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곳을 나와 입구의 벤치에 앉아 있는 토토로의 사진을 찍고 몇 걸음 옮기니 이곳의 명물인 금상 고로케-전국 고로케 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의 가판대가 있었다. 처음 먹어본 건 2009년이었는데, 당시 이 자리는 확실히 아니었다. 지점이랄 것까진 없지만, 판매대가 여러 군데로 늘어났을 수는 있겠지.

당시 어떤 맛을 먹었는지 확실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한국인을 겨냥한 매운맛의 고로케가 있었다는 건 확실하게 기억난다. 생각만큼 맵지 않아서 매우 기억에 남아 있다. 이번에는 카레 맛을 집어 들었는데, 입 안으로 흘러 들어간 카레가 매우 뜨거워 애를 먹었다.

입천장이 데일까 호호 불어가며 고난의 고로케를 다 먹고 들어가게 된 곳은 목공예품 전문점이었다. 주방 기구를 포함한 각종 장식 소품과 액세서리 등을 모두 나무로 만들었다. 금속 시계의 시곗줄을 모양 그대로 나무로 만든 것이 있었는데, 그 디테일에 감탄했다. 하지만 볼거리로는 충분했으나 구매욕까지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시계의 경우 2만 엔(20만원)을 상회했는데, 가격 자체도 부담이 됐지만 그 시계에 사용된 무브먼트에 신뢰감이 생기지 않았다. 차라리 그 가격이면 시계 전문 메이커의 중저가 라인을 사는 게 훨씬 좋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다음 코스는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유후인의 고양이집(由布院猫屋敷)>-검색해보니 屋敷는 대지, 저택을 의미. 결국 유후인에 있는 고양이 저택인 셈-에 도착했다. 이곳은 약 10여 년 전에 어떤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당시의 검색 키워드는 일본 여행이 아닌 고양이였다. 그때가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막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9년에 패키지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고, 그 여행의 코스 중에 한 곳이 이곳이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 셈이다.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십 년 전 처음 방문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는데 좋은 쪽은 아니었다. 마치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처럼 설레었지만, 막상 만나보니 예전 모습이 온데간데없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랄까. 아이템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2층에 있는 고양이 우리도 그대로 있었고,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참에 있는 쩍벌냥의 모형도 그대로였다. 그런 모습들을 보니 변한 것은 고양이집이 아니라 내 자신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음에 유후인을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다시 들를 것 같다. 왜냐면 나를 유후인으로 이끈 것은 긴린코도 온천도 아닌 이곳이었으니까. 그리고 다음 방문 때 내가 또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하니까.

1층으로 내려와 보니 카운터에 반가운 디자인의 고양이 북마커가 있었는데, 하우스텐보스에서 샀던 북마커와 같은 시리즈였다. 전에 산 그 디자인은 없었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예쁜 녀석으로 데려왔다.

 

다음 코스는 긴린코(金鱗湖). 2009년과 2015년에 이어 세 번째로 방문하게 되는 긴린코. 날씨도 방문했던 시간대도 모두 달랐기에 느낌 또한 제각각이다. 처음엔 날씨가 매우 흐렸었고, 작년에 갔을 때는 저녁 늦게라 어두웠었고, 화창한 날씨에 방문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9년에 갔을 땐 뭐가 뭔지도 모르고 가이드 설명만 들었었다. 그냥 이런 곳이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사람이 정말 많았다는 것도 기억난다. 작년에는 같이 간 친구와 늑장 부리다가 너무 늦게 가는 바람에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사실 늑장이랄 것도 없는 것이, 료칸에서 제공하는 석식을 먹고 가느라 시간이 늦어버린 것이었다. 물론 시간대를 조정할 수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작년에 느낀 것은 그저 건너편 식당의 불빛이 호수 표면에 비친 모습이 예뻤다는 것. 그런데 올해는 대낮이라 그런지 사람도 바글거리는 데다 호수 건너편 식당에 불빛이 없으니 조금 평범해 보였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 호수의 제대로 된 모습을 보려면 해가 질 무렵에 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그 시간에 맞춰서 간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해가 질 무렵에 가야 하는 이유는 호수의 이름에서 알 수 있는데, 직역해보면 금빛 비늘의 호수라는 의미다. 즉 해질 무렵 석양의 빛이 잔잔한 호수의 파문을 물들이는 광경이 금빛 비늘을 지닌 잉어의 그것처럼 아름다워서 이 호수가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 번을 가도 그 시간을 한 번도 맞추질 못하다니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어디 있겠나.

일단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자는 심산으로 오른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돌게 된 이유는 식당 근처에 아담한 신사-텐소신사(天祖神社)-가 있고, 식당 건물 바로 앞에 조그만 석재 도리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사를 거닐다 호숫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반대편에서 바라본 아담한 석재 도리이(鳥居)를 만났다. 그런데 처음에 볼 때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던 것이 역광을 받아서인지 묘한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소원을 빌면 바로 들어줄 것만 같은 영험함이 역광과 함께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달까.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좋은 피사체를 만날 때 늘 그랬듯 스마트폰 카메라에도 담았다.

신사에서 예상보다 시간을 보낸 탓에 호수 주변 산책 대신 신사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호수를 벗어나 역 쪽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유리공예 전문점에 들어가게 됐다. 사실 이곳은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외부 계단의 난간에 서면 아까 들렀던 고양이집의 전체를 카메라 뷰파인더에 잘 넣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난간에 서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선 이왕 온 김에 들어가 보자고 들어갔는데,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휘황찬란한 공예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2층은 오르골, 1층은 와인 용품을 비롯한 장식품과 액세서리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1,2층 모두 사진 및 영상 촬영 불가였다. 그래도 국적 불문하고 찍는 족속들은 찍고 있었다. 2층 먼저 구경하고 1층으로 내려와서는 마네키네코를 발견했다. 돈을 부르는 상징인 마네키네코를 보니 판교에서 새 직장을 구한 동생 생각이 났다. 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타고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 형상이었다.

동생을 위해 산 마네키네코를 들고 "도토리의 숲"으로 가 오전에 찜해둔 ZIZI-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키키와 같이 다니는 검은 고양이-의 피규어를 샀다. 그것을 들고 계산대로 갔더니 그 피규어 옆에 있는 컵(비슷하게 생긴 것)과 세트라고 해서 다시 가서 챙겨 왔다. 어떻게 사용할지는 고민 좀 해보자.

도토리의 숲에서 선방했다는 자부심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슈퍼세이브 잔치를 벌인 골키퍼와 같았고, 역으로 옮기는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가다보니 비록 1845분 열차를 끊었다고 해도 유후인에서 그다지 할 일이 없는데 굳이 머물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 섰다. 게다가 일찍 가면 어제 이루지 못한 LOFT와 나카스 야타이를 재시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지정석 티켓의 요금은 자유석 요금보다 비싸지만, 어차피 레일 패스로 구입한 것이기 때문에 티켓값이 아까워 머무를 이유는 없었다. 만약 지금의 나였다면, LOFT와 야타이 대신 산책을 선택했을 수도 있겠지만.

구글 검색으로 1416분 열차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온천은 하고 싶었고, 때마침 유후인 역 앞에 쭉 뻗은 길을 걸어 긴린코로 올라오다 봐 둔 온천 간판이 떠올랐다.

들어가기 전에 입구에 서서 바라본 온천장의 외관은 지극히 평범한, 우리네 시골 목욕탕 느낌이었다. 푸근해진 마음을 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스미마셍~"하고 외치니 어디선가 주인인 듯 직원인 듯한 어르신께서 나오셨다. 간판에서 본 대로 100엔짜리 동전 두 개를 준비해 들고 온천욕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요금이 200엔이라는 의미로) 검지와 중지를 브이자로 펼쳐 보이며 "하이, 도죠"라고 답을 했다.

돈을 지불하고 남탕으로 들어가 옷을 벗었다. 그런데 탈의실을 아무리 둘러봐도 수건이 없었다. 바깥에 말해서 받아야 하나 싶었는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의사 전달을 하기 위해 문장을 완벽하게 만들어야겠다는 강박, 다시 옷을 입고 나가야 한다는 귀찮음, 촉박한 시간으로 조급해진 마음. 이 세 가지가 화학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에 포기했다. 순간 탈의실 세면대에 옆에 놓인 정체 모를 수건이 레이더에 포착되었고, 아무도 없을 때 나와서 저 수건을 이용하면 되겠다는 심산으로 우선 입장했다.

탕에 입장해서도 난제의 연속이었다. 온탕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씻어야겠는데 어딜 봐도 비누가 없었다. 소 혓바닥 구이를 먹은 가게에서처럼 예시로 삼을 만한 다른 손님이 있었다면 따라 했겠지만 탕 밖에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래서 물만 받아서 몇 번 끼얹고 온탕으로 들어갔다.

탕 안에 얼마나 있었는지 도무지 감이 서질 않았다. 5분이 지났을까. 10분이 지났을까. 시계가 없으니 시간 감각이 없는 데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탕 안에 오래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이왕이면 사람이 없을 때 세면대의 수건을 이용하려다 보니 조급증이 도졌다.

주변 사람들이 언제 나가게 될지 눈치를 보다 잽싸게 나온다고 나왔는데, 하필 탕 안에 같이 있던 일본인으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 따라 나왔다. 마치 내가 세면대의 수건을 이용하는 꼬락서니를 감상이라도 하려는 듯. 하지만 언제 어디서 다시 보겠냐는 심산으로 철판 깔고 세면대 옆 정체 모를 수건으로 물기 제거를 시작했다. 그 두 청년을 통해 탕에서 탈의실로 나오기 전에 물기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은 알게 됐다. 그렇다고 세면대 옆 수건을 들고 탕 안에 들어가 제거하고 나오진 않았다. 결국 철판 물기 제거 미션은 완벽하게 수행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세면대 옆에 있던 수건의 정체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물기 제거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뭔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막상 하고 나오니 개운한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개운한 건지 개운하다고 자기암시를 주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진 개운한 쪽으로 보다 기울어 있다.

온천을 마치고 나와 선물용으로 쓸 우산을 사기 위해 길거리를 살피며 유후인 역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나 역에 가까워짐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나 많이 보이던 우산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사려고 했던 우산이 개똥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그냥 역에 도착할 것 같아 걸어온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매우 빠른 걸음으로.

처음으로 눈에 띄는 곳에서 사야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열심히 걸었는데, 생각보다는 꽤 걸었던 것 같다. 겨우 기념품 판매점에 들어가 진열대에 놓인 장우산과 3단 우산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펼치면 장우산이 예쁠 것 같긴 하지만 평소 휴대성도 그렇고 수하물로 보낼 때도 걸리적거릴 것 같아서 3단으로 두 개 샀다. 유후인까지 가서 산 선물이 하필 우산이냐고 하겠지만, 그 우산은 비에 젖으면 벚꽃 문양이 도드라지는 우산이다. 예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 파는 걸 본 적도 없기에 희소성이 있다. 그 외에 실용적인 특징은 없어 보인다. 써본 적도 없고 '기술의 일본'이라고 한들, 기념품 판매장에 대량 납품된 우산과 한국의 우산에 큰 차이가 있겠나 싶다.

우산까지 구입을 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나는 유후인 역으로 향했다. 시장기가 돌았으나 시간이 마땅치 않았다. 예상보다 시간이 남기는 했지만, 식당에 앉아 밥 먹을 여유까지는 없었다. 김밥천국이 있었다면 김밥을 두어 줄 사거나 가장 빨리 되는 메뉴를 선택했겠지만, 아쉽게도 유후인까지 진출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도시락이라도 사볼 요량으로 편의점을 찾아보았으나 의외로 없었다. 시골 동네라 없을 수도 있는 거지만, 역 주변이라는 지리적 조건으로 볼 땐 의외였다. 있는데 찾지 못한 건지, 실제로 없는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빈손으로 타야 했다. 더군다나 이날 타고 온 유후 4호는 이동식 판매차도 없어서-유후인 노 모리에는 있었나 싶지만-아침에 마시다 남은 커피로 두 시간을 버텨내야 했다.

주린 배를 잡고 후쿠오카로 가는 사이에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인의 기질을 엿볼 수 있었는데, 내가 탄 칸이 자유석 전용칸이라 입석 손님이 있었고, 그중 잠든 아이를 안고 있는 한 남성이 있길래 자리를 양보했다. 들리는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일어나서 그 사람을 보며 앉으시겠냐고 두 손으로 내가 앉았던 자리를 가리켰다. 그러나 그 남성분은 한사코 거절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도착 시각까지 40여분 남은 지점에서 내 옆에 빈자리가 생겨 앉아서 가셨다.

그러고 보니 동생과 갔던 2005년 일본 여행 때, 잠깐 탔던 도쿄 지하철에서 머리가 희끗한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때 그 남성분도 거절했었는데, 외국인-한국말로 떠들었으니까-에게서 자리를 양보받을 줄도 몰랐겠거니와 머리가 희끗해서 그렇지 양보받을 나이는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다. 기분이 나빴다면 지금이라도 이 지면을 빌어 사과드립니다. 모우시와케아리마셍(ありません,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의미).

그렇게 그렇게 하카타 역에 도착했다. 이쯤 되니 시장기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갔다. 너무 배가 고프면 가끔은 그 느낌마저 없어질 때가 있다. 그리고 나의 발길은, 프로그래밍된 로봇처럼 자연스럽게 지하철 티켓 자판기로 향했다. 어제 일찍 문을 닫은 탓에 가보지 못한 LOFT에 가기 위해.

 

어제에 이어 두 번째로 가는 거라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단지 가는 길에 들르려고 했던 타워레코드를 찾는데 애를 좀 먹었다. 검색 결과에 따르면 분명 7번 출구로 나와서 LOFT 가는 길의 우측 편에 보여야 하는데, 예상했던 곳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타워레코드의 간판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1층에 없으면 다른 층에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건물 외벽을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건물 뒤편의 이면도로로 가서야 건물 외벽의 한구석에 붙은 눈에 익은 간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표지판에서 레코드점이 어느 층이 자리 잡고 있는지 확인했다. 방문 목적은 1,2년 전부터 음원으로 구매해 즐겨 듣던 바준 토베타(Bajune Tobeta)라는 뮤지션의 CD를 사기 위함이었는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찾아봐도 그 사람의 CD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스태프에게 물어보니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서 영어 이름을 적어주니 원래 발매된 CD는 없다는 것이었다. 음원만 발매하는 사람인 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터덜거리며 나와 LOFT로 갔는데 오늘은 열려 있었다. 엘리베이터 옆에 붙은 안내판을 보니 LOFT는 해당 건물의 7층까지 차지하고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고, 7층부터 한 층씩 내려오면서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착을 알리는 알람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 7층은 오타쿠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각종 프라모델과 피규어, 다이캐스팅 자동차 모형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프라모델 코너에는 군함, 전투기, 건담은 기본이고, 일본 전통 가옥, 일본 기차 등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아이템들도 많았다.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됐지만 간... 훑고, 문구 코너가 있는 6층에 다다랐다. 7층이 오타쿠를 위한 공간이라고 앞서 썼는데, 그냥 이 건물 자체가 오타쿠를 위한 건물인 것 같다. 이 세상에는 문덕이라는 존재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것저것 둘러보다 무지로 된 다이어리를 살까 했는데, 표지가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나마 눈에 띄는 건 날짜나 휴일 표시가 있어서 패스했다. 한국이랑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 쓰기는 불편-써본 적 있음-하다. 그러다 어느 코너에 다다르니 오늘의 유후인과 작년의 하우스텐보스에서 만났던 고양이 북마커가 있었다. 이쯤 되면 웬만한 문구점에는 다 있다는 판단이 선다. 그러나 여기도 하우스텐보스에서 샀던 것은 없었고, 딱히 마음을 끄는 것도 없어서 구경만 하고 와야 했다. 그 외의 층은 별 인상을 주지 못했는데, 귀국하고 나서야 왜 5층에 있던 가방이나 지갑 중에 하나라도 사오지 않았던 걸까 라는 후회가 든다. 지금-여행기를 처음 썼던 20162-도 짙은 파랑 바탕에 옅은 귤색 테두리의 반지갑이 어른거리는데.

무탈하게, 무사히 LOFT를 나와 나카스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금 보면 걸어서 갈 수도 있었겠지만, 종일 걸어 발바닥이 아픈 관계로 도보 거리를 줄일 수 있는 전철과 도보의 조합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지도를 보니 LOFT에서의 도보로 야타이까지 가는 거리와 나카스카와바타(中州川端) 역에서부터 야타이까지의 도보 거리에 큰 차이가 없는 거였다. 그럼 난 어째서 굳이 전철을 타서 200엔을 쓴 거란 말인가. 아무래도 발바닥의 고통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 모양이다.

부슬거리는 비의 빗방울을 어깨에 얹고 도착한 그곳의 첫인상은 인터넷에서 본 낭만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현지 주민들 보다는 관광객이 많았고, 심하지는 않지만 호객 행위가 이루어지는 등 생활의 분위기가 보다 강하게 다가왔다.

그래도 배는 채워야겠고, 다 거기서 거기겠다 싶어 제일 먼저 말을 거는 곳에서 멈춰 섰다. (하카타에 왔으니) 하카타 라멘과 아사히 슈퍼드라이 병맥주 500ml 한 병을 주문했다. 각각 700. 받아들자마자 누가 쫓아오는 게 아님에도 정신없이 먹어댔다. 배가 고픈 것도 있었겠지만, 원래 빨리 먹는 성격인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라멘은 찰기라곤 느낄 수 없는 중면 정도 굵기의 면발을 사용했고, 국물은 예상했던 것만큼 짜지는 않았다. 결론은 그냥 그랬다. 맛 자체가 별로라기보다는 기대만큼의 맛이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포장마차는 생각보다 비싸다는 것이다. 항구 쪽에도 야타이 거리가 있다고 후쿠오카 안내도에 나와 있으니 다음번에 가게 되면 가보는 걸로.

야타이를 나서서 캐널시티(CANAL CITY)로 향했다. 아버지께 드릴 선물도 사야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숙소로 가는 길에 캐널시티가 있다. 막상 입장은 했는데 무엇을 사야 할지 적잖이, 매우, 심히 고민됐었다. 내가 딱히 남성용 액세서리를 쓰는 것도 아니고, 그 연배의 남성에게 선물을 해 본 적도 없다 보니 고민됐던 것 같다. 물론 술을 좋아하시니 술을 사면 쉽게 해결은 되겠지만, 사실 마셔버리면 내가 사드렸다는 기억조차 희미해질 분이시라 그건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술을 중독적으로 좋아하는 분이셔서 술로 효심이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은 어머니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벨트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그래서 재작년에 캐널시티에 들렀을 때 가본 수트 SPA 매장에서 검은 가죽 벨트를 샀다. 자유롭게 조절되는 것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없어서 구멍으로 조절하는 벨트로 사야했다.

벨트까지 사고 나니 직장 시절에 큰 심사를 마친 것 마냥 맥이 탁 풀려 얼른 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평소였으면 하카타 역까지 걸었겠지만, 역에서 숙소까지 또 10~15분을 걸어야 했기에 100엔 버스를 이용해 걷는 거리를 조금이나마 줄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짐 정리와 샤워를 마친 후 3층 휴게실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소설가의 일>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3일차

 

재작년 여름에 가려다가 전철을 반대로 타는 바람에 포기해야만 했던 고양이 섬(아이노시마, 相島)로 향하면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 일정이 개시되었다.

후쿠오카에 이름이 비슷한 역이 두 군데가 있는데, 한 곳은 후쿠다이마에(福大前) 역이고 나머지 한 곳은 오늘 가야할 훗코다이마에(福工大前) 역이었다. 훗코다이마에 역이 북동쪽이라면 후쿠다이마에 역은 남서쪽, 즉 완전히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번에 오기 전에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맨틀까지 도달할 정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꿩 대신 닭으로 갔던 모모치 해변에서 인생 사진 건지긴 했다.

오늘도 역시나 순탄치 못했으나 후쿠오카 교통 당국의 도움으로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앞서도 말했듯 아이노시마를 가려면 하카타 역에서 가고시마 본선(鹿児島本線)을 타고 훗코다이마에 역까지 가서 커뮤니티 버스라는 아담한 사이즈의 버스를 타고 신구 선착장에 내려 배를 타면 되는 것인데, 문제는 역에 내려서 발생했다.

원인은 신구 선착장까지 가는 마이크로버스의 시간표를 체크하지 않은 채 신구 선착장에서의 배 시각-920-만 생각했기 때문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마을버스와 같은 개념이라 그렇게 드문드문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일단 훗코다이마에 역에 도착한 시각이 830분이었는데, 마이크로버스 승강장에서 시간표를 확인해보니 819분부터 104분까지 비어 있는 게 아닌가. 수차례 확인해보았지만 타임 테이블이 변할 리는 만무했다. 이번에도 아이노시마는 글러 먹은 건가라는 순간 시간표 위에서 한줄기의 서광이 비쳐 내렸다.

하얀 종이에 뭐라 쓰여 있었는데, "平成271230から平成28まで, 20151230일부터 201613일까지 연말연시 특별 운송 기간이라는 것이고, 그 시간표에 의하면 848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는 것이다. 이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건가. 정말 오묘한 기분이었다. 아무튼 곡절 끝에 도착한 신구 선착장에서 그토록 원하던 920분 배를 타게 됐다.

고양이 섬의 위용이라고 해야 할까? 험악한 묘상으로 선착장 대합실을 지키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녀석의 존재는 아이노시마의 정보를 가장 많이 참고했던 블로그에서 알게 됐는데, 그 블로그의 글에 의하면 고양이 섬에서 육지로 밀항을 한 건 아닐까 라는 추측을 자아내게 하는 녀석이었다.

9시를 5분 앞둔 시점에 표를 끊었다. 출발 시간까지 25분가량 남았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려고 대합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스피커에서 배가 도착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선착장 쪽으로 가면서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갔는데, 그중에는 나와 같은 여행객도 있겠고, 볼일 보러 건너온 현지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연초에 본가를 방문하고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몇 명쯤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뒤로하고 배에 올라 내부를 둘러봤는데, 매우 깔끔한 인상을 받았다. 새 물건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이 배에 대한 관리인의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깔끔함이랄까.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섬까지 몇 분 정도 걸리는지 짧은 일본어로 물었는데 17분 정도 소요된단다. 짧은 일본어 부심을 품은 채 자리에 앉아 하카타 역에서 사 온 에키벤또를 먹었다. 간장 양념으로 재운 흑돼지구이를 얹은 도시락에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를 곁들여서.

17분 여의 항해 끝에 도착한 아이노시마의 선착장에서 나를 처음 맞이해준 녀석은 흰 고양이였다. TV에서 보는 것처럼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몰려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선착장 주변에 야구 관람객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면 이 섬의 고양이들 사이에서 관광객이 온다고 호들갑을 떨며 체면을 구기지 말자는 일종의 합의를 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 섬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참고했던 블로그에 따르면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주지 않는 것이 그 아이들을 위해서도 좋겠다고 해서 빈손으로 갔던 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뭐 걔네들이 아무리 섬에 산다고 해도 그런 것 때문에 몰려들겠나.

실제로 가서 보니 섬 곳곳에 간식을 주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팻말이 붙어 있었다. 우리야 어쩌다 한 번 가는 거지만, 수많은 '우리'가 간식을 주게 되면 이 섬에 살며 형성된 그들만의 본성을 잃게 될 것 같다. 결국 애정 혹은 호기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우리들의 무분별한 간식이 그들에겐-나름의 생태계니까-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간식에 대한 상념을 고이 접어 간직한 채 섬을 돌기 시작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섬은 반도 채 돌지 못했다. 내 부주의와 멍청함-뭔 차이인지 모르겠는데-의 하모니가 낳은 결과로 인해서였다.

일단 비행기 시각을 맞추기 위해 섬에서 14시에 출발하는 배를 타자는 것이 최초의 계획이었다. 그래도 섬 전체를 다 돌기에는 무리였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배 시간을 착각하지 않았다면 섬을 도는 루트 자체가 달라졌을 것이고, 조금이나마 더 돌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섬 쪽에 있는 선착장의 대합실에 들어가서 확인한 시간은 1440분과 11시 반이었다. 이상하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일단 1130분에 출발하는 배를 타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1440분 배로 나가도 괜찮긴 했지만, 점심까지 먹고 공항으로 가기엔 너무 촉박한 시간이었다.

결국 내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반 밖에는 없었던 거고, 유후인 때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급해진 나는 여유 있게 돌지 못했다. 항구가 시야에 들어오는 쪽으로만 돌다 11시에 맞춰 항구로 돌아왔다. 하지만 11시 반에 출발하는 배라면 11시에는 들어와야 정상인데, 출발 시각인 11시 반이 되어도 들어오질 않았다. 이번에도 이상하다는 말만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12시가 돼서야 한 척의 배가 들어왔고, 그 배의 관리인에게 몇 시에 출발하는 것인지 물으니 손가락 두 개를 펼치며 쿨하게 "두시요."라고 대답을 했다.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하다 싶어 시간표를 재차 확인했는데, 내가 들어오자마자 본 시간표는 신구항에서 아이노시마로 들어오는 배편의 출발 시간표였던 것이다. 안도감과 아이노시마에 있는 이불을 전부 차 버려도 시원치 않았을 황당함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선착장 한쪽 구석의 벤치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황당함은 담뱃잎과 함께 태워버렸고, 남은 두 시간 동안 이전 시간에 들른 곳과는 반대 반향으로, 조금 더 안쪽으로 돌았다.

오전에 간 곳은 선착장에서 나와 오른쪽이었다. 그쪽에 그냥 고양이가 많았다면, 이쪽은 유독 숨어 있는 고양이가 많았다. 이쪽은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지만, 약간 먼 쪽으로 시선을 던져보면 시선이 닿는 어디든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아이노시마 고양이 조례에 가장 좋은 일광욕 자세가 빵 굽는 자세라고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 같이 다 그 자세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짠했던 부분은 이들 사이에서 힘에 의해 관계가 설정되어서인지 귀나 발 등 몸 곳곳에 (영역 다툼 간에 발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처를 입은 녀석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 주변에서 보는 녀석들보다 조금 더 낫다고 생각되는 지점은, 적어도 못이나 화살 등으로 해코지를 당하거나 차에 치어 죽는 일은 적을 것 같다는 점이다.

그런 녀석들을 시선으로 쓰다듬으며 곤삐라신사(金比羅神社)를 들러 인가 사이사이를 통해 선착장에 다다랐다. 그 사이에 치즈색 고양이가 계속 따라오길래 놀아주면서 사진도 찍으면서 왔다. 그런데도 30여 분 가량 남아서 황당함을 날려 보낸 그 벤치에 다시 앉아 담배를 한 대 물었다. 그리고 김연수의 책을 꺼내어 몇 페이지 넘겼다. 그리고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아이노시마의 해풍을 폐포 하나하나에 넣었고, 햇살의 온기는 표피 세포 하나하나에 저장해 두었다.

사람 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게, 아이노시마도 외관상으론 그냥 우리네 조용한 바닷가 마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듯 보였고, 이곳 또한 젊은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젊은 사람들이라곤 나처럼 고양이를 보기 위해 배를 타고 건너온 관광객이나 낚시꾼 등의 외지인들뿐이었다. 이 섬 출신의 젊은 사람들은 내가 본 섬사람들이 고기를 잡아 번 돈으로 공부해서 후쿠오카나 오사카 등의 대도시에서 공부를 더 하거나 직장인의 삶을 영위해 나갈 것이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섬 생활이나 남겨진 부모님 혹은 가족들을 그리워하면서.

오후 2시에 출발하는 배에 몸을 싣는 것은 별 탈 없이 이루어졌다. 집에 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살짝 좋아졌지만, 언제 여길 다시 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더불어 다시 온다고 한들 오늘 본 녀석들이 다 남아 있지는 않을 거라는 데까지 생각의 가지가 뻗다 보니 가슴 한 편에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언제 방문하든 후쿠오카를 가게 되면 하루는 온전하게 아이노시마에 쏟아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14시에 출발하는 배를 타고 신구 선착장에 도착해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훗코다이마에 역까지 역순으로 왔다. 하타카까지 가는 열차를 3번 플랫폼에서 탄다는 걸 확인하고, 가고시마 본선에 몸을 실었다. 오늘 아침에도, 섬에 건너가서도 곡절이 많았던 나였기에 하카타행 열차를 제대로 탔는지 수시로 확인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조금 덥다는 느낌이 들어 입고 있던 유니클로 다운재킷을 벗었다.

후쿠오카의 겨울 날씨가 서울과는 다른 느낌이라는 걸 감안해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아 스마트폰을 꺼내 날씨를 검색해 보곤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검색을 통해서 확인한 이곳의 온도는 영상 14도였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운 느낌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영상 14도라니. 한국에 있었다면 그 온도에 입지 않았을 다운재킷에, 기모 안감이 들어간 타이즈에, 니트로 된 카디건에, 신발도 워커를 신고 있었으니 덥지 않은 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하카타 역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기 위해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아무래도 공항에서는 가격 대비 좋은 식사를 할 수 없다는 (공항 공통의) 경험칙에 의해서였다. 그렇게 찾아들어간 곳이 어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던 우동 가게였다. 얼마나 맛이 좋길래 줄을 섰지? 보다는 줄이 길었으니 맛이 좋은 거겠지? 라는 생각이 앞섰다.

정확한 메뉴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규동과 우동이 세트로 나오는 메뉴에 생맥주를 주문했다. 우동 국물이 내 입에는 짠 편이었지만 심하진 않았다. 규동도 괜찮았고, 생맥주도 시원했다. 그 날씨에 그렇게 껴입고 다니다 마시는 맥주라면 어떤 맥주라도 시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여행에선 늘 문제가 생겼으니 순조로운 흐름이 이어지면 읽는 사람으로서도 사고는 언제 터지는 걸까 라며 기대감 혹은 불안감이 앞서리라 본다. 나는 사람들의 기대를 쉽게 저버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번에도 문제는 생겼지만 시작점이 아닌 끝에서 터져버렸다.

잘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이 집은 현금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카운터 아래를 가리키는데,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있는 것이었다. 안내문이 있으니 할 말은 없지만, 안내문의 위치를 보면 눈이 허리에 달려 있지 않은 이상 보일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카드를 받아달라고 조를 수도 없고-졸라도 일본어로 졸라야 했으니-, 있는 현금만 받아달라고 해도-이 또한 일본어로 해야 했으니- 통하지 않았을 테고,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스러운 마음에 발만 동동거리고 있는데, 여권을 맡기고 현금을 찾아오란다. 참고로 식대는 1080엔이었고, 현금은 900엔 정도 있었다. 식대로도 모자란 금액이었지만, 사실 공항철도를 이용할 때 쓰려고 남겨둔 거였다.

하는 수 없이 스태프에게 여권을 맡기고 고장난 소총을 끌고 가는 패잔병처럼 캐리어를 질질 끌고 하카타 역 안내데스크를 찾아갔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한참 얘기하다 보니 그곳은 후쿠오카 은행 데스크였는데, 사정을 설명했더니 놀라울 정도의 한국어 실력으로 ATM기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위치는 생각보다 쉽게 찾았으나 인출하기 위해 삽입했던 두 장의 체크카드와 한 장의 신용카드 모두 오류 메시지가 떴다. 후쿠오카 은행 데스크 쪽으로 되돌아오다 발견한 (진짜) 하카타 역 안내 데스크에 문의해보니 한국어가 조금 되는 직원이 와서 세븐일레븐에 가면 있다고 했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시간적 여유라도 있으면 조금 더 돌아다녔겠지만, 이미 공항에 도착해 있어야 할 시각에 ATM기를 찾아 헤매다 보니 마음만 급해진 게 이유였다. 마치 경주마의 시선 처리를 위해 검은색 카드를 눈 옆에 붙여 놓은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양쪽 데스크에 돈 좀 빌려줄 수 없겠냐고 하기에 이르렀다. 후쿠오카 은행 직원은 직업의 성격에 맞게 규정상 그럴 수 없다는 답을 해주었고, 역 안내데스크 직원은 해당 매장에 그 얘기를 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일본어가 서툰 걸 아는 그 직원은 본인이 한국말을 할 줄 아니까 매장에 하고 싶은 얘기를 한국어로 해주면 일본어로 쪽지를 써주겠다는 것이다.

그 쪽지를 들고 가서 매장의 주소가 적힌 명함을 받아 들고 여권을 찾아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안내데스크 직원의 이름이라도 봐 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아쉽게도 그 정도의 정신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해서 수하물 체크와 발권을 마쳤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행기가 1시간 연착이라고 했다. 인천에서 한 시간 남짓한 거리니까 출발 직전이거나 막 출발했겠지.

남는 시간 동안 면세점에서 간단한 쇼핑을 하고, 매점 앞 벤치에 앉아 330ml짜리 기린 맥주를 한 캔 마시며 애써 마음을 달래 보았다. 그사이에 인스타그램을 보는데, 송도 쪽에 안개가 심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연착의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 가능했고, 탑승하면서 승무원에게 연착의 이유를 물으니 예상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인천공항에 착륙하고 나서도 같은 이유로 연착된 비행기가 많아 순서대로 처리하다 보니 착륙 시점을 기준으로 40분 만에 내릴 수 있었다. 그나마 이번에도 캐리어가 금방 나왔기에 비교적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항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오는데 무언가 아쉬운 느낌과 홀가분함이 교차되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이를 지배하는 건 공복감이었다. 생각해보니 오후 세 시에 혼돈의 식사를 하고 탑승 대기하면서 330ml 맥주 한 캔을 마신 것 외에 뱃속에 넣은 게 없었다. 그리고 이 공복감을 앞서는 게 있었으니 땀에 절여진 발이었다.

이 후텁지근한 날씨에 등산 양말과 워커에 종일 둘러싸여 있었으니 오죽했을까? 그러다 보니 평소라면 뱃속에 뭔가를 밀어 넣는 게 우선이었겠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발에게 우선권을 주고 싶었다. 이번 여행뿐만 아니라 어느 여행을 가도 어깨만큼이나 아니 어떤 경우에는 어깨보다도 더 고생을 하는 발이기에.

두 번의 지하철 환승을 거쳐 도착한 오이도 역에는 허 여사님께서 마중을 나오셨다. 승전의 소식을 가지고 온 개선장군도 아닌데 말이다. 밖에 있을수록 존재감을 더해가는 허 여사님께서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역시나 밖에 있을수록 존재감을 더해가는 집에 도착했다. 짐 풀고, 준비해 온 선물의 주인을 찾아주고, 라멘이 아닌 라면을 한 봉 끓여 먹고 곤히 잠자리에 들었다.

 

언젠가 또 가겠노라며.

후쿠오카, 아이노시마, 그리고 다시 못 볼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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